'깊이 없는 성장’ 즉 그에 상응하는 제자도가 나타나지 않는 수치상의 성장..
하나님이 이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약 성경의 여러 서신들을 쓴 사도들이 수신자들의 미성숙을 책망하며 성장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장에서 초점을 맞출 구절 : 골로새서 1장 28-29절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권하며,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작용하는 그분의 활력을 따라 수고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 (헬 : 텔레이오스) 성숙한 이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1.중요한 질문은 성숙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성숙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거나 팔다리가 몸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생명으로, 유기적으로 그분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숙이란,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그분과 성숙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2.그 다음 질문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성숙하느냐 하는 것이다.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한 답을 준다. 28절 문장의 기본 뼈대를 보자.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모든 사람을..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분명히 볼수록 그분은 우리의 헌신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더 확신하게 될 것이다…우리의 하나님이 왜소하기 때문에 우리는 왜소한 그리스도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그리스도가 왜소하기 때문에 우리는 왜소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세상의 종교 시장에는 많은 예수가 나와 있다. 그 대부분이 거짓 예수, 왜곡된 예수, 진정한 예수를 어설프게 모방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성숙에 이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선하고 참된 시각이 필요하다. (골로새서 1장 15-20절이 중요하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주로, 피조물의 주요 교회의 주로 선포한다. 그분의 존재 (하나님의 형상이자 하나님의 충만함)로 인해, 그리고 그분이 하신 일 (창조 세계를 존재하게 하시고 화해를 가져오신) 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는 이중적인 우월성을 가지신다. 그분의 우주의 머리이시며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분은 두 창조물 모두의 주이시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 답이다.
성경은 성부께서 그려 내신 성자의 모습에 성령이 색을 입히신 것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초대교부 히에로니무스는 “성경에 대해 무지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한 것이다.”라고 썼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경에 대한 지식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정한 예수에 대한 새롭고 분명하고 참된 시각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숙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3.이 성숙에 대한 부르심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지에 대해 질문할 차례다.
본문은 “모든 사람”이라고 세번 반복해서 말한다. 그리스도안에서의 성숙은 단연코 특별한 소수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거기에 이를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에게는 이중적인 책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안에서 성숙한 자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목표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우리 목회 사역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온전하고 선명한 시각을 주셔서, 먼저 우리 자신이 성숙한 자로 자라고 그런 다음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신실하게 선포함으로써 그들도 성숙한 자로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