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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사회윤리와 한국사회

기독교 관련책 읽기

by 거룩한나그네 2011. 3. 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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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출발점은 한국교회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아래에 나오는 질문을 던짐으로 분명한 방향을 잡는다.

“과연 어떤 것이 성경적인가 ? 도덕성의 위기에 처한 국가나 사회를 향해

선지자적 우려를 표명하는 것인가 ? 아니면 그것이 종교적 이슈가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을 지키는 것인가 ? 불의한 정치권력 때문에 정의의 원칙이 현저히 

파괴되고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해질 때 교회는 정교 분리를 이유로 선지자적 견해 표명을 거부해야하는가 ? 외견상 정치적인 문제들 속에 교회의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윤리 문제가 내포되어 있는 경우는 없는가 ?”

이 질문은 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닐 때 나에게도 절박한 것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변화되기 했지만 지금도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는 이 책은 나에게 중요하게 와 닿았다.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역사적인 접근을 통해서 대답하고 있다. 우리 신앙전통의 출발점인 칼빈, 베자, 낙스로 이어지는 칼빈주의의 정치사상과 루터의 정치사상을 먼저 논한다. 4-5장은 칼빈주의 기초가 미국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7-8장은 칼빈주의 전통이, 아이러니 하게도 대부분이 칼빈의 후예임을 외치는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보여준다. 10장에서는 이런 왜곡의 원인을 밝히고,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향들을 제시한다. 

1장에서는 정치, 정부 및 정치 권력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고찰한다.칼빈의 출발점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권세자들을 세웠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첫 번째 의무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관원들에 대한 저항이 하나님께 대한 저항이라고 주장했다. ’‘권위를 거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멸시하는 것과 같으며, 사실상 하나님의 질서를 뒤엎으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폭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칼빈은‘비록 우리가 터키인이나 폭군이나 복음의 불구대천의 원수 하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왜냐고 ?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폭군이 분명히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칼빈은 ‘사악한 통치자들은 주님의 채찍이며 심판의 도구’로 보았다. 칼빈은 폭군에 대한 순종의 근거를 성경을 들어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의 성경해석이 잘못되었음을 밝힌다. 분명히 칼빈의 해석은 이미 있는 전제로 인한 논리적 비약임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칼빈은 어떤 요인으로 폭군에게도 순종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한 듯하다. 어떻게 그런 전제가 형성되었을까 ? 저자는 칼빈의 기질 및 시대 상황과 관계된 것으로 본다. 칼빈은 기질적으로 질서에 대해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당시의 상황에 의해서 이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칼빈은 두 종류의 과격파 집단들과 싸우고 있었다. 첫 번째 대적은 재세례파였다. 이들은 지상의 정부를 무시했다. 두 번째 대적은 토마스 뮌쩌의 추종자들이었다. 이들은 온 세상을 뒤엎어서 성도들의 수순한 공동체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극단적인 가르침들 속에서 칼빈은 모든 혁명적 경향과 최대한 거리를 두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칼빈은 폭군에 저항할 수 있는 몇 가지 예외를 말한다. 첫째는 교회가 폭군의 잘못에 대해서 경고할 수 있다. 특히 설교자는 권력자에 대해서 파수꾼으로 임명된 자들이다. 둘째는 “국민의 관원들”이라 불리는 국민의 대표들에 의해서 폭군에게 저항할 수 있다. 칼빈은“만일 그들이 양민들을 강포로 괴롭히는 왕들을 묵인한다면 나는 그들의 묵인이 극악한 배신행위라고 선언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국민들의 자유를 보호하는 자로 임명되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배신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세 번째로 칼빈은 사사로운 시민도 폭군에게 저항할 수 있는 예외를 인정한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어떤 것을 명할 때” 백성들은 그것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보다 먼저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저항은 소극적 불복종이었다. 저자는 칼빈의 생각이 말년에 이르러 ‘적극적 저항’으로 선회했다고 말한다.‘존 낙스의 성공과 베자의 논문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그는 차츰 적극적 저항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칼빈의 견해는 ‘라 르노디와의 인터뷰’에서 또 말년에 출판된 사도행전과 다니엘 주석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저자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이미 시민들의 무력저항을 정당화하는 단락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단락은“공공연한 보복자”로 불리는 혁명가들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저자는 칼빈의 견해를 정리하면서 현대 교회를 향해 이렇게 묻고 있다.

현대에도 칼빈주의 교회들은, 국가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요 국가의 권력은

하나님께서 특정 목적을 위해 정부에 위임한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정부가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 불의한 권력으로 변질될 때 하나님을 대신해서 권력을 

책망하고 비판하는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 

저자는 이 질문을 한국교회를 향해 던지고 있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거짓선지자노릇을 해왔다. 8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한국사회가 불의한 권력으로 인해 고통당할 때 한국교회는 그 권력의 편에 붙어있었다. 칼빈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이것을 회개하고 진정한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2장에서는 존 낙스의 저항사상을 말하고 있다. 낙스의 저항사상은 점진적으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입장의 변화는 시대상황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낙스의 정치사상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메어리의 개신교에 대한 박해였다. 낙스는 정치적 보수주의자였다. 그래서 무력저항을 거부했다. 그러나 메어리의 박해로 인해 점점 저항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낙스의 저항 사상의 기초는 언약사상이었다. 언약사상에 기초해서 카톨릭을 우상숭배로 보았고, 카톨릭 미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회중에게 로마 카톨릭을 공공연히 비난할 것을 촉구했다. 여기서 낙스는 수동적 불순종의 경계선을 넘어선다. 낙스의 태도를 더 과격하게 만든 두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낙스에 대한 교회권력자들의 박해였다. 또 하나는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애매모호한 태도 때문이었다. 낙스는 스코틀랜드 귀족들에게 더 분명한 행동을 요구하게 된다. 마침내 낙스는 신명기13장에 근거해서 두 가지 혁명적 주장을 했다.“첫째는, 누구든지 백성들을 우상 숭배로 인도하는 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왕들이 우상 숭배자로 판명되면 그들도 처형해야 했다. 둘째, 우상 숭배자의 처형은 고위 공직자들에 의해서뿐 아니라 백성들 전체와 그들 각각에 의해서도 집행될 수 있다. 이것은 심지어 사사로운 시민들이 폭군들에 게 무력 저항하는 것도 합법적이라는 것이다.”칼빈에게서 좀더 나아가 ‘폭군 살해는 더 이상 영감 받은 사람(공공연한 보복자)의 특별한 사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든지 그것을 떠맡는 자의 평범한 작업이 되어버렸다.”칼빈에게서 예외적 권리였던 것이, 낙스에게서는 의무로 등장한다. 낙스는 교회와 국가의 역할이 서로 다르며, 제한적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낙스는 목사들이 강단에서 당대의 정치적 문제들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 하지 않았다.’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런 낙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는 사유화의 압력에 완전히 눌린 듯 하다.그래서 교회에서는 오직 개인의 신앙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오직 교회 안에만 계시는 하나님으로 감금하고 있다. 저자는 낙스를 통해 이런 한국교회의 죄악 된 상황을 보여주고, 심각한 죄악을 선포하고 있다.

3장에서는 베자와 정치권력에 대해서 다룬다. 저자는 베자의 사상이 두 가지 면에서 칼빈 보다 발전적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복종을 유보해야할 경우를 두 가지로 말한 것이다. 그들의 명령이 반종교적이거나 불법적일 때에는 불복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종교적 명령’이란 십계명의 첫 돌판이 금지하는 것을 명하거나 아니면 그것이 명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었다. ‘불법적인 명령’이란 동료 인간들에게 행해야 할 자비의 의무를 범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고서는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을 의미했다.’또 하나의 발전은 베자가 폭군을 두 종류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한 종류는 찬탈자이고, 다른 한 종류는 권력 남용자였다. 이것은 권력이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를 중시하는 것이다. ‘베자는 찬탈자에 관한 한 아무나 무력저항을 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했다.’이런 주장을 하면서도 현실을 완전히 무시 하지 않았다. 비록 찬탈자라도 백성들의 자유롭고도 적법한 동의를 얻으면 그 권력은 정통성을 가지는 것이다. 베자는 또한 합법적인 권력이 폭군으로 전락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한다. 이것을 위해 베자는 모든 신민들을 사사로운 신민, 관원, 그리고 의회로 나누었다. 베자는 사사로운 신민들의 저항은 반대하고, 관원들과 의회에 의한 저항을 주장했다. 이들의 저항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주권과 주권자를 구별하였다. 관원들은 주권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권 그 자체에 의해 세워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주권자에게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의회는 주권 그 자체의 수호자이다. 그러므로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주권자를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베자의 저항사상의 기초는 국민주권사상, 사회 계약 사상, 그리고 법치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칼빈 보다는 낙스와 베자가 훨씬 적극적인 저항의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각자의 기질의 차이와 각자가 놓인 상황의 차이가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저자는 낙스와 베자의 이론을 종합하면 완전한 시민 저항권 사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런 사상이 기초가 되어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인 절대 권력의 제한, 국민주권사상, 법치주의 사상 등이 형성되고 발전되었다. 그러나 8장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정교분리라는 명목하에 독재와 불의한 정권을 옹호하는 일을 해 왔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칼빈주의를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칼빈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반영한다. 우리는 이런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로만, 이름만의 칼빈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칼빈주의를 온전히 아는 것과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자 않고 있는 세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있어야만 한다.

부록에서는 마틴 루터의 정치사상을 다룬다. 루터는 두 왕국론을 바탕으로 해서 정치 질서를 인정한다. 루터는 세상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설교자들의 말씀을 통해 다스리는 나라이고 세상나라는 세속 권력자들이 검을 통해 다스리는 나라이다.’이런 이론을 통해 루터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했다. 국가는 영적인 문제에 간섭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종교의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 그리고 루터는 세속 군주들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평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군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 필요가 없음을 말한다. 그러면 루터는 위에 있는 권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 루터는 3단계의 점진적이지만 격심한 입장 변화를 겪었다. 첫째단계에서 루터는 황제에게 저항하는 것을 반대했다. 심지어 폭군에 대해서도 저항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농민전쟁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둘째 단계는 토고선언에서이다. 이 시점부터 루터는 황제에 대한 저항에 대한 자신의 노골적 반대를 포기했다. 세 번째는 1536년에 루터의 공식적 견해로 나타난다. 이때 루터는 자신의 초기 견해뿐 아니라 토고에서 취했던 입장도 버리고 황제에 대한 저항을 공공연히 찬성하게 되었다. 여기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자들을 교황의 병사들이라고 표현하면서 저항할 것을 촉구한다. 또 황제는 절대군주가 아니며 만일 그가 만일 그가 제국의 관습과 법률을 지키는 데 실패하면 독일군주들은 황제에게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네 사람의 개혁자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어둠을 걷고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들이 가졌던 태도와 삶의 원리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시대의 상황과 필요가 무엇인지 분명히 꿰뚫어 보면서 이것을 말씀의 원리로 살아내려고 한 노력과 용기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정치사상에 있어 그들의 주장은 지금에 와서는 진부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말해질 당시에는 목숨을 내어놓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진리를 지켜내고, 실천하고 가르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시대의 아픔과 그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공감하면서 말씀의 원리를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목숨을 걸고 진리대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신앙의 사유화가 활개치는 우리교회 안에서 이 네 개혁자의 삶의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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