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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회에 대한 논의

기독교 관련책 읽기

by 거룩한나그네 2007. 5. 2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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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회귀에서 현실참여로

첫번째 논의 : 우리의 현실
우리의
현실 - 교회 출석률의 급감, 주류 교파의 쇠락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서도 일어나고 있는가?

한국교회 역시 정체라는 말이 들리며, 점점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우리 운동에 미친 영향은 ?

그동안은 교회로부터의 운동원들이 유입되었다.

이것은 우리 운동이 전도 --> 양육 --> 재생산의 단계가 아니라

변화(양육) --> 재양육을 통한 성숙. (이것은 우리가 사명을 제대로 감당 못하고, 양육공동체로서의 사역을 하게 원인이기도 하지만, 외적으로는 성장을 왔다.)

이런 지표가 보여주는 현실은 이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도 --> 양육 --> 재생산

문제는 이것을 4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룰 것인가?

더욱 어려운 것은 대학생들이 더욱 바빠지고, 경쟁적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 교회의 성장

새로운 종교개혁(CELL교회에서 사용한 용어) 새로운 패러다임, 신사도교회등이 성장하고 있다.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들이 전반적인 교회 출석률의 하락을 뒤집을 만한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면, 이들의 승리감에 목소리도 중화되어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들을 통해 기존 교인이 새롭게 변화되었다거나 복음주의의 효과적인 선교를 통해 불신자 그룹에 기독교가 새롭게 확장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새로움 패러다임의 교회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순복음중앙교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요한 표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회에 대해서도 앞에서 던진 의문과 동일한 의문을 던져야 한다.

문제는 그러면 우리가 어디로 것인가?


두번째 논의 : 사역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

  1. 전통적인 환경 = 종교적인 믿음은 단체 내에서만 표현되도록 장소가 지정된다.

사회는 명망 있고 수적으로 강한 교회들에게는 자신의 중심적 위치를 내어준다.

사회적인 힘을 영적인 생명력으로 착각하기는 너무 쉽다. 시대의 복음주의 안에서 과거의 영광과 영예를 되찾아 신교도적인 기독교 도덕과 문화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도록 하자는 끈질긴 동경의 목소리가 높다. . 전통적인 환경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지만, 전통적 사고방식만은 여전히 자유주의적이거나 복음주의적이거나 주류교파거나 독립교파를 막론하고 모든 교파의 교회들에서 만연하고 있다.


우리 나라 교회에서도 이런 동경의 목소리가 높다.

특이한 것은 옛것을 회복하자는 목소리보다 미국처럼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이다.

에디답슨의 평가는 미국은 이런 것을 추구하다 망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교회는 이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1. 모더니즘 환경

모더니즘과의 전투를 통해 기독교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게 된다.

모더니즘과의 전투에서 복음주의가 태어난다. 이런 면에서 복음주의는 태생적인 한계 혹은 원죄를 가지게 된다.

기독교 변증론자들은 논쟁을 벌이기 위해서 그들의 도구를 채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변증과정에서 마련한 가정들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계시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지 않음.  

자신들의 일관성에 근거한 성경 내용의 신뢰성, 근대의 과학적 기준에 준거한 성경무오론

미스터리는 자리를 잃었다.

오스 귀니스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 - 사유화: 종교적인 믿음은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 그저 같은 생각을 가진 개인들간의 사적인 문제로 격하되고 만다.


  1. 포스트 모더니티의 환경

포스트 모더니즘 = 이성들이 이성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성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며, 그에 맞는 대중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도 특권을 가질 없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기독교는 전통적인 환경, 모던 환경에서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고,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가 왕따 당하는 이유이다. 단순히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절대적인 진리에 대해 주장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진리 --> 합의 그리고 나에게 맞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이라는 말로 다시 정의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나라가 세가지의 어떤 특정한 환경에 처한 것이 아니라, 세가지의 환경이 혼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은 포스트모던이 훨씬 지배적이다.(사무엘 에스코바. 벽을 넘어 열방으로.83페이지)


이런 환경의 변화에서 교회가 경험한 것은 주변화이다.

교회는 주변으로 밀려났다. (세속사회- 하비 콕스) 세속사회는 자신의 용도에 맞을 때에만 교회의 대표자들을 무대위로 불러들인다.(현대 사회로 돌아온 종교 - 하비콕스)

교회들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이겠다는 전략에서 파편화된 세계의 분야로 침투해 들어가겠다는 지상명령으로서 해산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은 우리 운동에 중요한 INSIGHIT 제공한다.

우리 운동은 지부세우기, 지부 중심의 운동을 왔다.

이것을 소그룹 중심, 소그룹을 통한 복음화 운동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소그룹을 중심으로 보내심 받은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소그룹이 일부가 아니라, 소그룹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소그룹의 네트웍이 지부이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소그룹의 네트웍으로서의 지부운영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의 정서와 얼마나 맞을 것인가? 공동체를 지향하며, 전체를 알아야 한다는 우리의 정서와 어떻게 맞출 것인가의 문제는 있다.


세번째 논의 : 대책은 무엇인가?

선교학적 훈련의 필요성 - MISSIONAL운동의 필요성을 보게 된다.

선교적 훈련이 필요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선교사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1. 문화를 알아야 한다.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려는 전통적인 선교사만큼이나 다양하게 문화를 알아야 한다.

해외로 나가는 것만큼이나 거리로 나가는 모험을 감행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선교사 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여기서 문화란 무엇인가?

캠퍼스의 문화에 대한 이해. 자신이 속한 캠퍼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론적인 틀에 의해서 캠퍼스를 이해하는 것과 경험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1. 온전한 증인으로서 훈련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호한 삶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다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서로 열린 의사소통을 만큼 소박해져야 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에게서만 증인의 확신을 찾을 있으며,

종교 단체나 난공불락의 기독교 변증론에서는 찾을 없다.

정통적 실천으로 살아가는 증인: 증인은 믿음과 순종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대가의 여부에 상관없이 우리 자신의 믿음에 대해 무조건적이고 급진적인 서약을 하고 그에 따라 살고자 하는가?

동행하는 여행자로서의 증인 : 증인이 개인의 허무한 최후와 존재부재의 깊은 밤을 직시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동행자와 함께 심연의 언저리까지 같이 걸어야 한다.

진리를 기반으로 타인 중심의 삶을 사는 증인


  1. 새로운 리더십 : 레너드 스윗은 이러한 리더십을 항해하는 것에 비유했다.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변화는 성장하기보다 불연속적이다.

변화는 예고도 없이 급격하게 진행된다. 유연성과 즉각적인 응답을 요구한다.

기업 : 중간 관리자들의 층을 제거하여 계층 구조를 단순하게 만들고 좀더 시장에 민감하고 적시에 기회와 도전에 반응할 있게 되기 위하여 사업 조직을 자율적인 부서들로 분리하였다.

교회 : 선교에 중심을 신학을 마련, 다문화적인 환경에서도 신학을 논할 있어야 한다.


이런 대응책들은 우리 운동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캠퍼스 문화에 대한 이해, 선교사로서, 증인으로서의 삶을 훈련하기(특히 포스트모던시대의 증인을 길러내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과 조직.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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