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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목회를 읽고

기독교 관련책 읽기

by 거룩한나그네 2011. 3. 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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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던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함께 사역하던 선배가 눈물로 읽은 책이라며 읽어보라고 주었다. 그 때는 주님의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이 재철 목사가 누구인지 모르던 터라 그냥 읽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내 속에 접혀져 있던 비전과 열정의 날개가 다시 퍼덕이는 것을 느꼈다. 그 당시 나는 교회로 인해서 많이 좌절해 있었다. 말씀 앞에서 신실하게 사시는 목사님이었지만 몇 가지 부족한 면으로 인해 성도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성도들을 교회에서 떠나가게 만드는 모습을 보았을 때,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고, 나도 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대학 때부터 막연하지만 꿈꾸던 교회가 있었는데, 서로 싸우고 떠나갈 뿐 아니라 계속해서 비난하고, 서로 원수처럼 말하는 성도들의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성도들과 함께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 이 지상에서 주님의 몸으로서, 주님을 드러낼 수 있는 교회를 세울 수는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들로 인해 좌절해 있던 때였다. 그러나 이 책은 주님의 교회가 세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 회복되었다. 나의 부족한 면을 다 아신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와 동역하기를 원하신다. 이 재철 목사님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나님께 붙들린바 되어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일하시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통해 서로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당신의 일을 이루실 것을 신뢰할 수 있도록 회복되었다. 주님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자신의 교회답게 만들어 가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대한 비전을 주시고 만들어 가실 것이라는 신뢰를 회복시키셨다. 이런 감격의 마음을 안고 이번에 두 번째로 읽었다. 처음 같은 흥분은 적지만 좀 더 음미하면서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개인적인 삶과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몇 가지 그림들을 그리게 되었다.

첫 번째로 이 책이 내게 던진 도전은 ‘태도’의 문제다. 내가 배운 것은 성경대로 살고 사역하려는 태도이다. 이 재철 목사님은 이 책에서 먼저 성경구절을 들고 그 구절을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의 곳곳에서 항상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장신대 개강집회 마지막에 있은 질의응답시간에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신대원 1학년때 목사님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목사님들이 너무나 말씀을 읽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씀과 기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신대원 3년 기간동안 4시간 이상을 자 본적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학과공부 하는 시간외에 대부분의 시간은 말씀 읽고 기도하는 데 보냈다고 했다. 이런 바탕위에서 그는 자신의 사는 방식과 사역하는 방법을 성경위에서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확신 속에서 목회자가 누구인지,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 이 그림이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확신이 없으면 자주 흔들리고, 힘들며, 현실에 의해서 변질되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목사님도 젊었을 때는 이상적인 교회를 꿈꾸며, 라면만 먹으면서도 행복하게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그 분은 현실에 의해 너무나 변질되어 버린 것을 보게 된다. 그 분은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 꿈에 목숨까지 걸 수 있는 확신이 없었고, 명확하고 구체적인 모습도 없었다. 그저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그림만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현실의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 목사님을 비판할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내가 그 나이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살고 사역할지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재철 목사님이 보여주신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고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이 더 큰 확신으로 나를 사로잡으시기를, 하나님이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그림들을 그려주시도록, 내가 그것을 잘 받아 간직하도록.’ 그리고 지금부터 말씀에 나의 전 인격을 쳐서 복종하는 훈련을 더 철저히 하고자 한다. 평생을 말씀의 종으로 살아야 한다. 김 서택 목사님을 모시고 수련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본문으로 한  설교를 끝내고 방에 들어가셔서는 한 시간 가까이를 엉엉 우셨다. 그 날 밤에 수련회를 평가 하고, 기도하는 자리에서 김 서택 목사님이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자신이 하는 설교가 자신을 향해 천둥처럼 들려와 회개하며 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며 교인들이 떠나고,점점 끼니는 없는 날이 많아 져서,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바로 그런 자신을 향해 주님께서 “세상의 부를 좇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때의 울음을 기억할 때마다 나를 돌아본다. 말씀 앞에 나는 어떤 자세로 서 있는가 ? 며칠 전 아내가 나에게 '요즘 감사하는 게 뭐예요 ?‘ 하고 물었다. 내가 대충 얼버무리자 ’그럼 회개하는 것은 뭐예요?‘ 이 질문에도 대충 얼버무리자 단번에 ’그렇게 말씀을 공부하면서 감사도 회개도 제대로 없으면 영혼이 죽어 있는 거 아니예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망치로 맞은 듯 했다. 분주함 속에서 나는 어느덧 말씀의 종의 자리를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사역의 현장은 이보다 더 분주하고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갈 것인데 벌써 이래서는 안 된다. 성령이여 나를 도우소서. 

두 번째로 이 책이 사역자로 사는 내게 던진 도전은 책임지는 태도이다. 1부 8장에서는 주님의 교회가 세워져 가면서 있었던 실수와 사고들을 말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이 재철 목사님은 책임지는 태도로 여기에 임한다. 이런 태도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이런 실수를 통해 더 큰 은혜를 맛보게 하셨음을 간중 하고 있다. 가장 비겁한 지도자는 좋은 일이나 칭찬은 자신이 취하고, 책임져야 할일이나 욕먹을 일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지도자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교회 지도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못된 됨됨이가 내 속에도 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으로 덧입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이런 책임지는 태도는 목회자의 정확한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정체성에 대해서 3부에서 다섯 가지로 정의한다. 목회자는 구도자이다. 목회자는 모두의 목사이다. 목회자는 예절자이다. 목회자는 연출자이다. 목회자는 자기관리자이다. 이런 분명한 정체성의 확립이 있어야만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책임지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3부에서 목회자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 정체성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의 항목들을 말한는데 이 중에 몇 가지를 나의 지침으로 삼았다. ‘목회자는 이 세상 누구보다 법을 더 잘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수요일과 토요일은 말씀준비와 예배준비에만 보낸다.’‘모두의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비판의 소리에 열린 귀를 가져야 한다.’‘모두의 목사가 된다는 것은, 교인 모두를 주님의 편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든 대화 도중 무의식중에 반말이 나오지 않도록 늘 주심했다.’‘남의 자동차를 타면서 상석을 차지 하지 않았다.’‘예배 후 식사를 하게 되면 그 댁 주인이나 가장 연장자를 상석에 앉게 했다.’‘목회는 섬김이다. 그리고 예의 없는 섬김은 섬김일 수가 없다.’‘어떤 교인보다 더 많이 성경을 읽고, 어떤 교인보다 더 많이 기도하는 자가 되라.말씀과 기도는 습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주어진 사례외에 돈을 받지 말라.’‘반드시 시간을 지켜라.’‘교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목회자이어야 한다.’‘실수를 깨달았을 때 즉시 사과하라.’‘내일 떠나더라도 지금 섬기는 교회를 종착역으로 생각하라.’‘교회재정에 관여치 말라.’‘이성이 교역자 혼자 심방해 줄 것을 요구하면 절대로 응하지 말라.’‘목회자들끼리 서로 사랑하라.’‘지식과 정보는 반드시 공유하라.’‘절대적인 것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도 있어야 하지만, 상대적인 것이라면 모두를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중단없이 정진해야만 한다.‘ 이런 구절들이 나의 사명선언서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누린 유익은 나름대로의 교회에 대한 그림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첫째는 공동체적인 교제가 기초가 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준 유익 가운데 하나가 교회는 반드시 자기 건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전환은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고를 열어 주었다. 대천덕 신부는 어떤 글에서 교회는 敎會가 아니라 交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성경에서 만나는 교회와 우리가 경험하는 교회의 차이점들을 볼 때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가정의 무너짐과 가정과 가정간의 교제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적 교제의 무너짐이 교회의 기초를 무너뜨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체적 교제가 없이 예배가 가능 한가 ? 서먹하고 어색한 인사도 어려운 공동체가 성령으로 하나 된 공동체인가 ? 성찬으로 한 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 모른다면 이 또한 본질이 빠진 것이 아닌가 ? 진정한 교회의 회복의 시작은 공동체적인 교제의 회복으로 시작해야 한다. 교회유지를 위해 들이는 돈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교회건물 중심이 아닌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가정교회가 기초가 되는 교회들의 모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동역사역에 의한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동역에 대해서 강조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동역 역시 담임목사와 부목사로 나누어지는 상하관계의 동역이다. 내가 이루고 싶은 동역은 역할과 은사에 기초하는 수평적인 동역이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충분히 보았으나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로만의 동역관계가 아니라 실제적인 동역자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움직여 가는 교회를 만들어 보고 싶다. 셋째는 평신도 사역이 이루어지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 이 책에서는 설교와 교회 운영에 있어서의 평신도들의 참여에 대해서 많은 사례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평신도 사역의 본질이 평신도들의 교회참여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신도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 수 있도록 구비시켜주는 것이 더 본질적인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교회가, 그리고 목회자가 도와주어야 한다. 교회에서 영적으로 잘 가르치면 자연스럽게 세상 속에서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안이한 생각이다. 다원화 되고 세속화 된 세상 속에서 성도들은 기본적으로 이원론적인 생각과 삶을 살게 된다. 이원론적인 생각과 삶의 모습을 깨뜨리고 진정한 제자의 모습을 살 수 있도록 신학적으로 영적으로 도와야 한다. 주일과 평일의 의미를 바로 정립하며, 예배와 일간의 올바른 의미 정립을 통해서 일상생활속의 영성을 구현해야 내는 진정한 제자들의 교회를 만들고 싶다. 

이 책의 많은 유익에도 불구하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몇 군데 있다. 그 중 하나는 인용한 성경본문의 해석에서 어떤 부분들은 동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2부 2장에서는 창2;10-14절을 통해서 사랑의 회복에 대해서 말한다. 목회는 에덴의 회복이라는 면에서 이 부분을 말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 물은 생명인 동시에 사랑이다. 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신분이나 학력이나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송두리째 주어 버린다.’라고 해석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이 성경본문이 ‘에덴동산은 사랑이 가득한 곳이었다’고 말하려고 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부 3장에서도 히브리어 ‘간’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반드시 울타리가 쳐 있어야 간일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런 해석의 타당성을 잘 모르겠다. 또한 이 울타리를 나 중심의 사고방식, 세속적 사고방식을 차단하기 위해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3부 3장에서는 목회자는 연출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행20;17-21절을 인용하고 있으나 이 구절을 여기에 인용하는 이유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목회자가 연출자라는 생각이 성경적인지 아니면 이 재철 목사님의 개인적인 성격의 문제인지를 구분하기가 힘들다. 여기 기록된 생각들이 비 성경적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성경의 인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들이 그 생각을 흠뻑 받아들이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또 하나 쉽게 동의하기 힘든 것은 목사의 임기를 정하는 문제이다. 목사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보이는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대형 교회들의 목회세습이 문제가 되는 현재 상황에서는 이것이 굉장한 개혁적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반드시 이것만이 유일하게 성경적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임기를 정하는 것만이 주님의 교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고 하는 데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새들백 교회를 이끌고 있는 릭 위렌은 성장하는 교회의 특징중에 하나가 한 목사를 통한 오랜 기간의 목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재철 목사님이 떠난 이후 주님의 교회는 아직도 담임목사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데로 임 영수 목사님이 설교봉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도 담임목사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오래 된다면 교회에 결코 유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놓으면서 나는 오히려 많은 과제를 안게 된다. 올바른 교회관의 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설교에 대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말씀과 기도가 습관이 되도록 지금부터 훈련해야 한다. 평신도 사역을 위한 실제적인 방안들과 영혼의 치유를 위한 성경적이고 실제적인 방법들을 익혀야 한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올바로 사고하는 신학적이며 윤리적인 틀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것들이 과연 남은 2년의 과정에서 가능할 것인가 ? 하나님만을 유일한 청중으로 삼고 나를 부르신 부르심을 따라 달려 나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아우성과 사단의 유혹 속에서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며 그 음성을 따라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주여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주여 지혜를 베풀어 주소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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