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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교수의 철학 이야기

기독교 관련책 읽기

by 거룩한나그네 2011. 3. 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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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목표로 하는 것은 근대 철학자들의 생각을 소개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 서양 철학자들이 어떤 문제로 씨름했고, 왜 그런 문제를 붙잡고 씨름했는지, 그 씨름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결과가 무엇이며, 그래서 그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왜 우리는 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철학자들의 생각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철학자들은 대체로 시대의 문제, 과학과 도덕, 정치와 종교의 문제 또는 삶의 궁극적 문제를 다루되, 한 개인이 당면한 문제보다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이 다루는 문제는 당대의 보편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철학자들이 주는 대답은 그 시대를 헤쳐갈 수 있는 오솔길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곤란한 점은 당대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혼란스러움으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철학자들은 이 당대의 사람들의 시야를 열어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이 어떻게 이 일들을 수행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근대 철학이 다루는 중심적인 문제는 “주체로서의 인간”과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다. 이것은 중세가 자기모순으로 폭발한 후 근대가 필요로 하던 것들이었다. 중세의 영향으로 인해 신의 죽음을 선언하지는 못했지만, 신이나, 진리나, 국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인간을 모든 것의 기초로 삼는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인간(의심하는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리고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근거로 삼는다. 파스칼은 불같은 신앙 체험을 가진 철학자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사람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근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근대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기독교의 가르침 없이는 설 수 없는 시대인 동시에 반 기독교적 경향으로 흐른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또 근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포스트 모던과의 관계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포스트 모던 철학자로부터 데카르트가 상갓집 개처럼 맞고 있음을 말합니다. “포스트모던 철학은 한마디로 반 데카르트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가 추구한 것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추구하는 것의 차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데카르트가 이성,자아,의식,명증성,기초,일원성을 추구했다면 요즘의 포스트모던니스트들은 반이서,타자,무의식,모호성,무기초,다원성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죠.” 이런 점에서 이 시대의 흐름이 된 포스트모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철학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필요성은 대부분의 신학이 근대철학의 체계에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이 책에서는 루이스 벌코프를 들고 있다. “벌코프가 누구 못지않게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자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그리스도인에게 가르치면서 그가 사용하는 틀과 개념은 철저히 서양 철학의 존재론적 개념입니다.” 이런 면에서 신학서적들을 읽으면서 진리와 그 진리를 설명하는 철학 체계를 구분해서 볼 수 있는 힘을 더해 준다. 실제로 한국 교회는 철학을 무시해 왔다. 더 심하게 말하면 신학도 무시해 왔다. 이런 무시 때문에 생기는 현상은 철학체계(system)를 절대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시대에 맞추어 옷을 입히는 노력을 하고, 우리 상황에 맞추는 상황화는 이단시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진리의 변증은 반드시 그 시대의 철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신학책들은 근대 철학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근대철학을 이해하는 것은 진리와 변증의 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런 틀의 이해는 우리 시대의 변증에도 도움을 준다. 우리 시대의 주류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보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이런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그에 맞는 변증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근대의 결과로 기독교는 주류에서 밀려났다.  근대의 결과로 세속화가 이루어 졌고, 이 세속화된 시대속에서 기독교는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런데 포스트 모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독교에도 기회가 왔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복음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온 것이다.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려면 제대로 변증을 해야 한다. 이런 변증을 위해서도 근대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도움을 받은 것은 철학자들의 생각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근대는 “신체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부요하고 덕스러운 삶을 사는 것, 이 세가지 세속적 가치가 삶의 목표가 된 것”이다. 의학, 기계학, 도덕학이 그것을 직접 얻어낼 수 있는 수단이고 그 밑바탕에는 자연학이 깔려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과학이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작업을 한 것이다. 스피노자 철학의 계기는 무엇인가? “스피노자에게 철학은 단순히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활동이 아니라 구원을 얻는 행위이고 구도적 행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영원토록 지속적인 최고의 기쁨을 얻고자 철학을 했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런 최고의 선에 이르고자 여섯 가지의 수단을 사용한다. “첫째는 자연에 대한 인식이고, 둘째는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고, 셋째는 어린이의 교육과 도덕 훈련에 힘쓰는 일이고, 넷째는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총체적 의학을 개발하는 일이고, 다섯째는 시간 여유와 편리를 위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일이고, 여섯째는 지성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지성 개선의 방법을 고안해 내는 일입니다.” 홉스의 정치철학은 30년 전쟁이라는 종교전쟁에 의해서 촉발되는 것이다. 로크의 사상을 다루면서도 로크가 가졌던 문제의식을 먼저 소개합니다. 로크의 문제의식은 다원주의였다. 그래서 로크의 문제는 두 가지였다고 말한다. 하나는 모든 것이 취향의 문제라면 주관성만이 유일한 판단 기준인가? 두 번째 질문은 만일 모든 것이 취향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공동체의 삶을 꾸릴 수 있는가? 

이렇게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를 듣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시도를 했는지를 보게 되면 한 결 이해가 쉬어진다. 또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철학 자체를 다루지 않으면서도, 철학이 다루는 문제가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사고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줌으로 좋은 사고의 훈련이 된다. 

이 책을 쓰고 있는 강 영안 교수는 한국 교회에서나 철학계에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관점들은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준다. 서론에서 “근대성의 문화는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에 오히려 유리한 쪽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칠 수 없는 비극이 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 기독교는 이미 근대성의 문화에 큰 영향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복음의 공적 의미를 상실한 채 영적 구원과 개인적 경건만을 주로 강조하는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신앙의 통합적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현재 한국 기독교의 문제를 지적하는 소리들은 높다. 그러나 그 문제의 근원을 이렇게 분명하게 지적하는 경우는 드물다. 

파스칼을 읽으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불의 철학자 파스칼. 우리 시대는 불을 강조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파스칼 같은 철학자는 어디에 있는가? 파스칼처럼 생각과 삶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헌신에서 온전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홉스의 철학을 다루면서 이 책은 미가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 그리고 홉스의 생각을 함께 두고 이야기 한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철학의 하나로 “정명론”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정명론은 우리가 고민해야 보아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오늘 우리에겐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까? 깨끗한 정부 정상적인 국회,공정한 사법부,투명하면서도 효율적인 기업, 다음세대를 생각하는 교육을 정말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답은 간단할 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법과 규칙을 지키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겠습니까? ”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이런 일을 만들어 내는 국가를 말한다. 그러나 교회도 이것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밖에서의 삶이 정명론에 가까워야 하지 않을까?

로크의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의 종교 다원적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말한다. 저자는 베드로전서 3:15-16절을 통해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말한다. “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라는 말씀처럼 신앙을 변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대답하다 라는 말에서 변증학이란 말이 나왔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겠지요? 다른 신앙 다른 종교 다른 신념체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소망의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과 함께 소망의 이유, 즉 소망의 근거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한국 기독교의 문제는 변증하는 종교가 아니라 정복하는 종교로 알려져 왔다. 실제로 교회가 좋아하고 즐겨 쓰는 표현들도 대부분 정복이다. 이런 태도는 다원주의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이런 태도로 나가면 기독교만 게토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말하는 태도를 가지고 변증하는 훈련을 해야만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쉽게 쓰려고 했다는 말에 동감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움도 있다. 최근에 읽은 탁 석산의 “철학 읽어주는 남자”라는 책과 비교하게 된다. 이 책은 현대의 철학을 다루면서도 쉽고, 재밌고, 유쾌하다. 이 책에 비하면 강교수의 철학이야기는 여전히 진지하고, 너무 무겁고, 어렵다. 이것을 한계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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