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혁교회는 제도로서 교회가 직접 해야 할 교육의 영역이 있고, 믿는 부모나 신자들이 책임을 지고 할 교육의 영역이 따로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결과 교회는 교회 안에서의 성경 교리교육과 이를 담당하게 될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의 영역을 맡게 되고, 믿는 부모와 신자들은 교회가 고백하는 교리를 기반으로 하는 일반 교육의 영역을 책임지게 된다.’ 한국에서는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무너졌다.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에 대한 전통이 없고, 이를 위한 지침과 방법도 부족하다. 교육기관을 통한 신앙교육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세속화된 교육의 비속에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전전 긍긍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모든 교육을 떠맡아야 할 필요가 제기된다. 교회가 신앙교육도 해야 하고, 전인적 교육도 해야 하는, 과중한 부담을 교회교육이 다 맡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하는가? 교육을 더 잘하기 위해서, 온갖 기자재를 갖추고, 다양한 교육방법을 동원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역부족을 느낀다. 온갖 미디어의 영향과 5일간 계속되는 세속교육의 영향력을 어떻게 하루 만에 새롭게 할 수 있는가? 이런 면에서 온전한 교회 교육을 위해서는 교회의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건전한 가정을 세우는 일에 초점을 두는 교회, 가정이 중심이 되는 교회,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체계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과격한 시도로는 가정교회로 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구조적인 노력을 통해서 가정의 역할일 살아날 때 교회 교육은 좀 더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더욱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교회로서의 교육의 영역을 지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2. ‘개혁교회의 신자들은 적어도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자신들의 힘이 미치는 한 신실한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교사들에게 자녀들을 맡겨 교육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되는 것이 참 부럽다. 첫째 딸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수원에 있는 중앙 기독 초등학교에 보래려고 여러 가지를 알아본 적이 있다. 문제는 너무 돈이 많이 든다는 것과 경쟁률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인의 수가 20%가 넘는다는 한국에서 믿을만한 기독교 학교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이다. 도대체 왜 이런 어려움이 있는 것인가? 한국 교육의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문제는 교회가 성도들에게 이런 면에서 훈련을 시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를 표방하지만 언약의 관점에서나 문화적 소명의 관점에서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들은 돈 많이 벌어서 아이들을 위해서 많이 투자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교회가 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분명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잘 교육하고 훈련해서 작은 규모이지만 학교를 설립하고 교육하도록 해야 한다.
3. ‘교회와 학교의 영역주권이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가 직영하는 대학을 가지고 있다. 개혁주의 교육을 위한 대학이 있다는 것은 좋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더욱 교회다워지고, 개혁해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대학직영을 재검토해야 한다.... 교회가 대학이나 병원을 직접설립 운영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개혁주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역사적 교훈을 무시한 결과를 우리의 눈으로 보고 있다. 병원이나 학교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을 본다. 이 책이 1994년에 나왔지만 이런 원리는 그 전부터 알려졌을 것인데, 왜 이런 원리를 무시한 것일까? 마음이 굳어지고, 귀가 멀면,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선배들의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다. 그러나 반명교사로 삼아야 한다. 늘 말씀의 거울과 역사의 거울을 통해 나를 닦아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진리의 빛으로 나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사역의 장에서 달려가면서 느끼는 위기는 사역자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죄인이요, 성도로서 하나님과 대면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삶이 오래 되면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애써 주 앞에 서 있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늘 명심하자.
4. 목사를 청빙하는 과정과 청빙을 받고 수락하는 모든 과정을 지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야 한다. 그러난 내가 눈으로 보는 현실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인간들이 세운 계획과 필요 더 나쁘게는 청빙하는 사람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목사를 선택하기도 한다. 또 영적인 능력이나 인품등을 보기 보다 학벌이나 배경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말들도 들린다. 무엇이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지는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사람들의 소굴로 만들었는가? 이렇게 세속화된 교회를 어떻게 정화할 수 있는가? 가장 시급한 것은 나를 정화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고, 성결함을 위해 몸부림치기보다, 실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도방식. 하나님의 부르심 보다 당장의 이익에 먼저 눈이 가는 죄 된 본성. 하나님의 필요를 보기보다 먹고 사는 문제에 먼저 머리가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이런 죄악된 본성과 죄의 속삭임과 싸워 이겨야 한다. 십자가로 죄를 죽이며 나아갈 때에만 목자로서의 목사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5. 취임을 언제 할 것인가? 주일인가, 평일인가? 또 취임식을 잔치로 할 것인가? 환영행사로 할 것인가? ‘취임이나 장립식이 이제는 이런 비본질적인 것을 멀리’해야 한다는 지적에 충분히 공감한다. 목사직, 장로직이 섬김의 으뜸 자리이기 보다는 섬김 받는 으뜸 자리가 되어 가는 이유의 첫 번째가 이런 취임,장립식에도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목사로서 안수를 받은 후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자,“이제 제대로 죽으라고 명령을 받았는데 축하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분은 40이 넘어서 중국선교에 헌신하시고 지금도 중국에서 사역하고 계시다. 목사로 안수 받는 것으로 고생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섬김의 으뜸자리, 죽음의 으뜸자리에 세워진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얼마나 자주 세속적인 사고방식과 이미지에 농락당하는지 모르겠다. 식당에서 음식 대접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모습, 선물 받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모습 너무나 잘못된 생각들이며, 세속적인 자세이다. 섬기러 오신 왕,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늘 담아가도록 노력하자.
6. ‘교회교육은 담임목사의 책무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니 내실있는 청소년 교육이 될 리가 없다.’ 현재 청소년 교육의 문제를 이렇게 진단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청소년을 전문으로 하는 사역자가 오히려 더 잘 교육하고 훈련시킬 수 있다. 그리고 교리 교육의 문제는 좀 더 생각하고, 실천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요즘의 분위기는 옛적 것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주입식은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안고도 교리교육을 해야 하는가? 해야 한다면 어떤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환경의 문제이다. 철저히 돈으로 계급지워지는 사회속에서, 입시만이 살길이 되는 사회속에서, 쉴 수 없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불행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이런 분위기를 무시하고 교회교육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개혁교회의 교육 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거나, 적용이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런 잣대로 현재의 우리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현실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면, 현실을 이기는 복음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현실을 거스르며 천국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이 나의 소명이며, 의무이다.
7. ‘설교에 대한 정의가 바로 정립되어 있지 않는 세계에서는 설교 강단이 속화되기 쉽다.’ 이런 지적의 적용은 목사만이 설교할 수 있다로 가서는 안 될 것 같다. 오히려 목사가 되어서 설교의 중책을 맡고도 소홀히 하는 목사들에게 경고하며 적용해야 할 것이다. 목사들로부터 설교에 대한 정의가 없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강단이 속화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혁교회 목사가 설교에 쏟는 정성과 노력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고 주관적으로 깨달은 것을 말하는 것이 설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계시하신 뜻만을 전해야 한다.’‘목사는 매주 가장 많은 시간을 설교 준비하는 일에 바치기 마련이다. 개혁교회 목사는 하나의 설교를 만드는데 적어도 이틀 이상을 드리고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위로가 된다. 그러나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목사가 되어서도 설교를 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을 통해 성령의 조명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영광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이런 영광을 누리는 설교자는 그냥 은혜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모함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는 일에 시간을 많이 내자. 주석을 통해 쉽게 깨닫기보다, 원어와 씨름하고, 묵상하며, 내 삶에 적용해 나가면서 깨달아가야 할 것이다. 주님과의 비밀스런 관계에서 깨닫는 것이 있을 때에만 선포할 것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루에 최소한 2시간 이상은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데 보내야 겠다.
8. 한국 교회 대부분에서 교리에 대한 강조를 보기가 힘들다. 교리교육에 대한 두려움이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 상호간에 있는 듯 하다. 교리 교육은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웨스트 민스트 신앙고백이나 하이델 베르그 신앙고백이 중요하지만 문제는 너무나 길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부분들은 그 당시에는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너무 평범한 언급들도 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나는 사도신경을 가르쳐야 겠다. 내년 상반기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4-5번에 걸쳐 사도신경을 가르쳐야 겠다. 물론 이것을 설명할 때 하이델 베르그 신앙고백이나 웨스트 민스트 신앙고백을 참고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기본적인 내용은 사도신경이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가르치는 방식도 현재에 문제가 되는 내용들을 변증하는 것과 더불어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을 분명히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덧 붙여 교리는 아니지만 십계명을 잘 가르치는 것도 효과적일 것 같다. 성화의 길에 율법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하나님의 요구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교리를 가르치는 것과 함께 중요한 부분이다.
9. 봉사직이 어떻게해서 명예직으로 인식되게 되었을까? 장로직이나 집사직은 분명 봉사직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이것을 명예직으로 이해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아마도 한국화의 현상인 것 같다. “완장”이라는 소설에서는 완장이 사람에게 권력을 주고, 사람을 어떻게 파괴시키는 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현상임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도 이런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어떻게 이런 현상을 복음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복음이 주는 자유와 해방,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교회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이런 방향을 평생의 목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도하며, 추구하며 살아야 겠다. 인간의 죄성, 문화에 배태된 죄성에 복음의 세계관이 잠식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도록 가르치며, 이것을 이겨내는 제도를 만드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할 것이다.
10. 성찬식을 어떻게 하면 본래 의미를 살릴 수 있을까? 개혁교회가 성례에 대해 가지는 높은 기준과 방법들은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고민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성례가 되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머리와 마음으로, 눈과 귀로 그리스도를 경험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내용 어떤 형식 어떤 순서를 밟아가는 것이 좋은가? 이런 것에 대해서 더 많이 질문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11. 이 책을 읽은 전체적인 소감은 하나님의 교회와 인간의 교회(?)라는 것이다.
개혁교회 역시 많은 한계가 있겠지만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교회 생활과 그것이 이루어지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우리를 보면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교회라는 생각이 든다. 목표나 방법이나 제도 역시 인간중심적인 것들이 많다. 이런 느낌이 사실이라면 우리 교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미약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냥 이렇게 지내면서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면 된다고 생각해온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큰 방향에서부터 그것을 이루는 구조와 방법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