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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설교

기독교 관련책 읽기

by 거룩한나그네 2011. 3. 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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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단어는 ‘종’이라는 말이다. 설교자는‘종’이어야 한다. 설교자는 성령의 종이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은혜로 깨어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말씀의 종이어야 한다. 말씀이 말하는 것을 말해야 하며, 말씀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말씀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며, 또한 회중들을 하나님 앞에서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 설교자는 또한 회중들의 종이어야 한다. 회중들과 야합해서는 안 되지만 회중들들 섬기기 위해서 설교해야 한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가 이 종의 자리를 떠날 때 그는 설교자가 아니며, 그의 말은 설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현실 속에서는 설교자가 설교를 통해 군림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이 가슴 아픈 현실을 두고 기도해야 하며, 나도 혹시 이런 잘못된 자리에 서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그러기 위해 결심한 것 중 하나가 최소한 2-3년에 한 번씩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지기로 한 것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나 현재 한국의 현장들을 예리하게 진단하고 있어서 놀라게 된다. 이 책은 원래 1969년 봄에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에서 행해졌고, 1971년에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런데 30년의 세월과 영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을 넘어서 우리의 현실을 아프게 드러내고 있다. 첫 번째로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부분은 설교의 우위성을 포기하고 다른 프로그램에 의존하려는 교회의 모습이다.  1장에서 로이드 존스는 ‘설교가 퇴조하기 시작하자 예배에 있어서 형식적인 요소가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예배에 여흥적인 요소로 영화를 보여주기도 하고 찬양을 점점 더 많이 하지만 말씀을 읽는 일과 기도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성가대 지휘자가 교회의 새로운 직책으로 부각되고 그는 성가대 지휘만이 아니라 분위기를 창출하는 일을 떠맡게 되었다. 분위기를 만드는 데 너무 시간을 들여서 그 분위기속에서 정작 설교할 시간은 없어는 모순까지 일어난다.’ 여기에 더해서 간증 순서의 등장, 상담사역에 대한 강조등도 설교에 대한 강조점의 약화의 증거라고 말한다. 이런 일들이 현재 조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더 나아가 설교자 자신들이 설교의 우위성을 확신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가 언제나 최우선이며, 설교에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1,2,3장은 바로 이것에 대한 논증이다. 로이드 존스가 비판하는 설교의 우위성을 포기하는 설교자들의 모습 속에 나의 모습도 있고 조국교회의 모습도 있다. 설교가 쇠퇴하면 교회는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면 세상은 빛을 잃고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현재 조국의 모습이 로이드 존스의 말들에서 그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로 7장에서 다루고 있는 회중에 의해서 좌우되는 강단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지나친 강조로 인해서 회중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설교를 망치고 있고, 교회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 로이드 존스는 이런 경향에 대해서 분석하면서 ‘오늘날 사람들은 논리가 정연한 진술은 생각하거나 따라갈 수 없다.’‘오늘날 사람들은 성경적 전문용어를 이해할 수 없다.’‘과학의 시대에 비과학적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현대인들을 잘 이해해야 한다.’‘교의적인 설교는 하지마라’는 등의 잘못된 목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목소리는 현재의 설교자들의 귀에도 큰 울림으로 들리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들보다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 앞에서 우리의 설교를 듣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로 로이드 존스에게서 얻는 현재 우리 모습에 대한 통찰력은 음악적인 요소들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14장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곳곳에서 예배를 지배하고, 설교를 대체하려는 음악의 과도함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찬양인도자에 의해서 주도되는 예배, 설교 전에 있는 성가대의 분위기 잡기 등은 설교의 약화를 만회해보려는 헛된 노력이다. 그런데 이런 헛된 노력이 현재 조국교회에서 만연하고 있다. 설교가 부수적인 것이 되는 찬양예배가 넘쳐나고 있다. 이것은 로이드 존스의 분석에 의하면 교회가 망해가는 징조이다. 조국교회의 독특한 특성을 고려하긴 해야겠지만 이런 예언적인 말에 귀 기울이며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가 설교자일 수 있는 비결로 소명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압도적인 소명감과 강제적 강박의식에 의해 세워진 설교자, 교회에 의해서 세워진 설교자, 이처럼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세워지고 붙들려진 자 만이 설교자의 삶의 살수 있다. 이런 소명의식이 설교자에게만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반대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소명을 따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다면 평생 설교자로 살아야 하는 나에게 이런 소명이 있는가 ?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로이드 존스가 말하는 과정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나를 부르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나는 지금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하나님 앞에 서있다. 이것을 의식한다면 온전한 설교자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로이드 존스가 설교자에게 요구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면은 성령의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6장에서 설교자의 기본자질은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9장에서는 설교자의  준비를 다루면서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것에 있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한다. ‘모든 것보다 기도하고 싶은 모든 충격에 대해 언제나 반응을 보이라.. 나는 이것을 절대적인 법칙으로 삼으려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한 구절이 유별나게 부딪쳐 오면 계속 읽어나가지 마십시오. 즉시 멈추어 그 구절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렇게 평소에 성령에 충만할 뿐 아니라 설교단에 올라가서 성령에 충만할 것을 말합니다. 설교를 잘 준비해서 설교단에 올라가야 하지만 설교단에서는 원고에 매이지 않고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설교는 오직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강조한다. 설교의 메마름은 성령에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에는 분명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령에 충만 하라는 그의 말에 충심으로 동의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매일의 기도의 처음에도 성령의 충만함을 마지막에도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가 직업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주일날에 설교하는 주요 이유가 설교한다고 미리 알려졌기 때문인 정도까지 이르면 설교자에게 있어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없습니다. 그 의미는 그 설교자에겐 설교하는 일이 자기의 직업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직업주의에 빠진 설교자들에 대해서 로이든 존스는 이 책에서 자주 언급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이런 설교자들의 설교들을 많이 듣게 된다. 하나님에게서 들은 것이 없으면서도 오직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설교자들과 그들의 설교, 하나님의 말씀은 오간데 없이 자신의 사변만을 늘어놓는 설교자들, 왜 그들이 그렇게 되었을까 ? 로이든 존스는 그들처럼 되지 말기를 당부하면서 많은 제안들을 한다. 물론 원리는 ‘성령으로 충만’한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원리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먼저는 설교가 무엇인지를 계속 기억해야 겠다.(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 근원적이고 중요한 질문은 설교가 무엇인가 ? 하는 것이다.) 설교자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제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벌거벗은 자아(naked self)로 하나님과 만나며, 최소한 몇 명의 사람들과는 이것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설교자요 목회자라는 허위의식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서는 훈련을 해야 한다. 계속 기도해 오는 일이지만 좋은 영적인 스승을 만나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나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기도할 때마다 이런 것을 가르쳐 달라고 구해야 겠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고, 읽을수록 더 깊이 나를 바꾸는 책이다. 이번으로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두 번째에 읽으면서야 이 책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로이드 존스의 마음과 충고들의 중요성을 모두 알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그 동안 내가 설교다운 설교를 하지 못했구나 하고 실망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직 이렇게 설교해야 된다는 자신감도 없다. 그러나 감사하게 되는 것은 겸손함으로 주님만을 의지할 마음을 주셨다는 것이다. 나 같이 연약한 것과 동역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설 때 하나님이 나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에 감격 할 뿐이다. 부르신 자를 인도하시며, 부르신 자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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