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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에 대한 단상들

내가 쓴 글들

by 거룩한나그네 2011. 3. 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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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학기 강의를 듣고서

분주하고 혼란스러운 학기를 마쳤고,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치룬 시험도 끝났다. 이제 조금은 여유 있게 지난 학기를 돌아보게 된다. 목회학이라는 과목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이며,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목회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해 주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반추(reflection)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 앞에 다시 서고자 한다. 

1-1. 나의 의문들과 “계시와 실존의 해석학”이라는 패러다임

한 학기를 지배해 온 이 단순한 말이, 내 속에서 점점 더 크게 공명(共鳴)하는 것을 느낀다. 이 강의를 듣기 전에 내게는 몇 가지 의문들이 있었다. 

① 목회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땅의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 속박된 노예를 자유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 이런 하나님의 사역의 중개가 목회이다. 그러면 이런 목회를 하는 데 나는 무엇으로 이런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가 ? 어떤 사람은 설교에 목숨을 건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제자훈련에 목숨을 건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전도와 성경연구에 목숨을 건다고 했다. 또 목회의 대상도 다 달랐다. 주일학교에, 청소년에, 청년에, 장년에, 가정에, 노년에... 그러면 나는 누구에게 무엇에 생명을 걸어야 하는가 ? 하나님이 주신 확신을 따라 목숨 건 사역을 통해 하나님나라는 흥왕 되고, 왕성해져 간다. 나도 하나님나라를 위해, 대학생들을 위해 뼈를 묻겠노라고 기도하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런데 언젠가 나는 목숨을 걸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엇에, 누구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 이런 의문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향이 분명해 졌다. 계시와 실존을 품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진 피터슨과 헨리 나우웬의 책들을 읽으면서 이런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도움이 목숨 걸게 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임재와 그 분의 음성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만이 온전한 것에 목숨 걸게 한다. 그러므로 이제 기도한다. 계시와 실존을 좀 더 깊이 품고 기도한다. 

② 남은 신학수업 기간 나는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 참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꼭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도 많다. 그러나 “계시와 실존의 해석학”이라는 말을 들어면서 나는 둘 다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을 계속해서 깨닫게 되었다. 리차드 포스터가 지적한 “피상성”이 나의 삶의 특징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을 이해한다. 무슨 뜻인지, 더 나아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 그러나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지는 못한다. 그 말씀을 하시고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지 못하며, 그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가끔 하나님이 은혜 베푸실 때 이런 경험을 하긴 하지만, 너무나 드문 경험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설교하며, 무엇으로 가르칠 수 있는가 ? 움킨 것이 없이 어떻게 부르짖으며, 본 것이 어찌 증언할 수 있는가 ? 실존에 대해서도 나는 참 피상적이었다. 신학을 배우면서 대부분의 질문과 답은 서양 신학자들의 것이었다.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문제와 이 땅 사람들의 실존에 대해서는 너무 피상적이었다. 목회사역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청년 대학생들의 고통, 30대 젊은 부부들의 고통, 교회에서 당하는 고통 등.. 그런데 나는 그 고통의 소리 너무 있는 이 땅의 실존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개별화된 삶이 아니라 공통된 실존들의 목소리로 듣지 못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이것을 좀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주께서 나에게 주신 음성이 “묵상”하라는 것이었다. 좀 더 깊이 침잠하여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말씀이 계시가 되기까지 침잠하며, 상담의 말이 실존으로 나아가기 까지 묵상해야 겠다. 침잠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이 두 가지가 서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몇 번 이런 과정을 시도해보지만 아직은 어렵다. 어쩌면 목회의 현장에서는 더욱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양보하지 않고 이것을 지켜나가야 한다. 계시와 실존이 서로 해석하는 과정이 없는 목회는 단지 인간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③ 말씀을 가르치는 데 왜 변화가 없는가 ? 대학 4년을 성경공부하고, 교회에서 집사가 된 한 자매가 도벽으로 인해 온 교회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말씀을 그렇게 연구하고도 변화가 없는 그 자매를 보면서 당황스러웠고, 그 자매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교회를 보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본인에게 사실 확인을 하기 전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도둑으로 몰아버리는 여 집사들, 그 여 집사들의 말만 듣고, 금요 심야기도회에서 공식적으로 도둑으로 선포해버리는 목사님, 도무지 교회다움을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30대 남자 집사들의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참 많이 좌절했다. 말씀보다는 사업에만 관심이 있는 모습들, 말씀을 배우지만 변화되지 않는 속사람의 모습과 부부간의 관계등.. 도대체 말씀은 그 능력이 없는가 ? 아니면 사람들의 완악함이 도를 넘어선 것인가 ? 이런 고민들도 “계시와 실존의 해석학”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해결의 윤곽을 드러냈다. 문제의 실마리는 내게 있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계시와 실존의 중개자이며, 증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증인으로서의 삶이 부족했다. 어쩔 때는 말씀 그 자체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니 여기에 무슨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가 ? 능력을 상실한 말씀은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시대의 악함을 너무 얏 보았다는 것이다. 돈,섹스,권력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악함이 사람들의 목줄을 잡고, 발밑에 버티고 있다. 이것들을 직시하고, 심각성을 공감해야 한다. 그런 후에도 여전히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실존들이 처한 상황을 공감하지 못하면, 말씀은 허공을 치고 마는 것이다. 또 이런 공감이 있어야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많이 가진 것 같으나, 실제적으로는 가난하며, 성공한 것 같으나, 하나님나라에서는 실패한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계시 앞에 설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하나님을 의존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성령으로 인한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나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이다. “말씀의 중개자”로서 살기 위해서는 자기관리가 필수적이다. 이런 면에서 두 주간에 걸쳐서 계속되었던 목회자의 자기관리라는 강의가 유용했다. 특히 오전은 하나님과만의 시간으로 정해두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공감하게 된다. 여기에 생명이 걸려 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어떻게 지킬 것인가 ?’ 이다. 



1-2. 이 패러다임의 유용성

목회의 현장에 서게 되면, 그 현장이 던지는 수많은 과제에 매몰되기 쉽다. 신학과정에서 다루었던 문제들은 논리적인 문제들이지만, 현장의 문제는 종합적이면서, 비논리적이며, 인격적인 문제가 많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비교의식과 낙담. 이런 상황 속에서 필요한 것은 가장 필요한 것은 조언자이다. 나를 잘 알면서도, 객관적인 입장과 약간은 높은 위치에서 조언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원칙이다. (릭 위렌의 표현으로는 목적이다.) 나의 삶과 목회사역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내가 그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아니면 그 원칙을 떠나 있는지를 볼 수 있다면, 현장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수업을 통해 배운 “계시와 실존의 해석학으로서의 목회”라는 패러다임은 이런 원칙을 제공해 주었다. 내가 이 원칙대로 살고, 목회한다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오스 기니스는 ‘소명’이라는 책에서 소명을 따라 살 수 있는 비결로 하나님만을 “유일한 청중”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 바로 하나님이 세운 원칙을 분명히 견지하면서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원칙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이런 원칙을 가지고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야 말씀의 중개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패러다임은 개인적인 삶에도 유용하며, 사역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도 유용하다. 그리고 이것을 원칙으로 삼아 교회의 운영방식, 구조등도 결정할 수 있다는 면에서 유용하다. 목회 사역이 지향하는 목적과 그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운영방식과 구조가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가 목적과 구조에 있어 일관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목적은 목적대로 좋아 보이는 것으로 정하고, 운영방식은 그때 그때 배우는 좋은 방식들을 도입한다. 그래서 많은 사역을 하긴 하지만 일관성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목적과 운영방식, 구조에 일관성을 가지는데 “계시와 실존의 해석학”이라는 패러다임이 유용하다. 이 패러다임을 가지고 목적과 목표, 그리고 실제적인 운영방식과 구조 그리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재배치 할 수 있을 것이다.


1-3. 강의에서 좀 더 보완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점

목회현장에서 최근에 많이 듣게 되는 말들이 “리더십”과 “영성”이라는 말이다. 교수님의 논문제목에서 영성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강의 중에 이 문제가 좀더 집중적으로 다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계시와 실존의 해석학”이라는 것 자체가 영성이 무엇인지를 함의하고 있지만 이것이 영성이라는 말로 분명하기 언급하지 않는 듯 합니다. 최근의 영성신학의 흐름의 장점과 단점 등에 대해서 알고 싶었습니다. 또한 최근에 영성신학에서 카토릭적인 요소의 도입에 대해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 지등이 논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리더십의 문제도 좀더 집중적으로 다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위해서 시간의 효율적인 사용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기 초반 부 한 주 정도, 3-4일 밤에 집중적으로 패러다임과 그 패러다임을 통한 목회학의 여러 주제들을 다루고, 이것을 적용하는 책들을 읽도록 유도하고, 학기 후반부 한 달 정도에 실제적인 주제들에 대해서 발표하고 적용할 수 있는 강의들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약간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적용에 대한 어려움이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묵상과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목회자가 되면 오전시간은 반드시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으로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부터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이것을 적용해 보고자 새벽 4시에 일어나 말씀을 읽고 묵상한 후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다시 말씀을 좀더 연구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이렇게 할 때 새벽에 확보되는 시간이 약 4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에 갔다 왔다 하는 시간 등을 생각하면 집중적으로 쓰기는 어려웠습니다. 또 학기말에 이를수록 밀려오는 과제와 체력의 한계로 묵상하기 보다는 조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이렇게 어려운데 목회현장에서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긴 바램이 일단 오전 1-2교시에 수업을 없애든지, 최소한 필수 과목이라도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 하는 것이었고, 좀더 나아가 전체적인 수업이 좀 더 줄어들고, 묵상과 기도에 대한 학점이 좀 더 늘어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많은 교수님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하겠지요. 그리고 실제적인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교수님들의 생각에 의해 우리의 오전이 보장 되지 않는 것보다 더 크고, 직접적인 이유로 우리가 전도사로, 강도사로, 부목사로 사역하는 동안 우리의 오전은 보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 이것은 여전히 저에게 남아 있는 과제이기도 하고, 교수님의 과제로 삼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 나는 어떤 목회자가 될 것인가 ? (내가 생각하는 목회자와 그에 따른 실천 사항들)

2-1. 하나님이 원하시는 태도

① 하나님은 나를 목회자로 부르시면서 가장 먼저 아비로서의 목회자의 태도를 말씀하셨다. “선생은 많으나 아비가 없다.” 진리에 대해서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에 인색하지 않는 아비로서의 삶, 일의 잘되고 안 됨에 연연하기 보다는 사람을 얻느냐 못 얻느냐에 더욱 마음을 두는 아비의 자세로 이 길을 가야겠다.

② 하나님은 나에게 천재성을 주시지는 않았다. 대신 최선을 다하는 마음과 정신을 주셨다. 평생을 고3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배우고,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날 대단한 일을 하지 못했어도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2-2.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 (목회자이기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사람이 되는 소원을 주셨다. 소원을 주신 하나님이 이루시길 기도하며)


① 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기도는 배워가는 것이다. 기도에 앞서가는 사람들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 늘 성령의 가르치심을 따라 기도하는 것을 배우고자 한다. 이제야 겨우 하나님 앞에 머물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기도가 깊어져 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기도의 영역을 넓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도로 하나님이 세계 가운데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개인과 교회뿐 아니라, 조국과 세계를 향해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사람은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볼 수 있어야 찬양할 수 있다. 또한 찬양의 태도와 찬양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고, 일을 대해야 하겠다.


② 나는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경을 잘 아는 것이 첫 번째이다. 성경66권을 PBS하는 일에 평생의 목표를 둔다.

사역의 여러 현장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말씀을 묵상하여, 계시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에 말씀 묵상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말씀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설교하지 않으며, 가르치지 않겠다.


③ 나는 계속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계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개인적인 조언자를 둔다. 또 개인적인 성장을 자극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함께 성장해 가야 한다. 담임 목회의 가장 큰 위험이 독단성에 있음을 본다. 공동체적인 교제를 통해 나의 상황과 사역의 상황을 나누고, 조언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계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독서가 중요하다. 평생 목표로 청교도들의 저작을 모두 읽는다. (특히 리차드 십스, 존 번연, 존 오웬의 글을 우선 읽는다.) 또 인문사회과학분의 책을 한 달에 한권 이상은 읽는다. 이것을 통해 한국사회의 현실을 온전히 볼 수 있어야 한다. 


계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세미나의 참석도 중요하다. 뭔가 목회에 써 먹기 위해서는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겠다. 오직 나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좋은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 또 세미나의 내용을 일차적으로 내게 적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겠다.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된 후에야 동일한 내용으로 가르친다.


④ 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질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써야할 최저의 생활비를 정한다. (이 최저의 생활비는 교인들의 평균보다 조금 더 낮게 측정한다.) 이 이상으로 생기는 모든 수입은 이웃을 위해서 쓴다. 주님이 보여 주시는 필요에 아낌없이 쓴다.


몸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 된 이웃을 몸으로 섬겨야 한다.(장애우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등..) 직접적으로 이들이 있는 곳에 가서, 자원봉사하며 섬기는 삶을 산다.


⑤ 나는 전도자로서의 삶을 산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최우선적인 관심을 영적인 상태에 둔다. 그 사람을 잠시 만나든 오래 만나든 항상 영적인 상태에 관심을 둔다. 불신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둔다. 


내 삶이 전도지가 되도록 항상 힘쓴다. 복음으로 인한 자유와 기쁨, 행복을 드러내며, 또 복음에 젖어서 살도록 노력한다. 이런 내적인 복음의 능력이 흘러넘치는 삶을 살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3. 온전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나는 어떤 목회를 할 것인가 ?

좀 온전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 동안 기도와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점들은 책과 실제적인 적용을 통해서 정리해 가야 할 것입니다. 


3-1. 공동체가 살아있도록 만드는 목회

교회의 기본적인 단위는 가정교회가 되도록 한다. 5-6가정이 모인 가정 교회는 공동체적 교제를 중심으로, 양육과 전도, 선교 그리고 예배가 이루어지는 하나의 작은 교회이다. 

이 가정교회를 통해서 자녀들의 신앙교육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한다.자녀의 신앙교육의 중심이 가장 먼저는 가정에 그 다음에 가정교회에 있어야 한다. 전체적인 교회는 이런 가정과 가정교회의 신앙교육을 돕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핵가족화, 개인주의화 되어 가는 세상에서 복음의 진리의 핵심인 공동체를 맛보도록 하는 목회를 한다.


3-2. 평신도들을 구비시키는 목회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교회의 운영은 장로와 집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도록 한다. 목회자는 이들이 온전히 사역을 감당하도록 구비시켜 주는 사역을 하며,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일을 한다. 

평신도들의 구비시키는 사역의 본질은 평신도로서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살수 있도록 구비시켜 주어야 한다. 목회자들은 평신도들이 세상 속에서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일상생활의 영성’을 개발하고 가르쳐야 한다. 또한 세상 속에서 정의를 구현하며 살다가 당하는 고난을 교회가 책임져 주어야 한다. 이런 일들을 감당해 주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목회해야 한다.


3-3. 사람을 길러내는 목회

교회 사역을 감당할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다. 특히 가정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을 길러내고, 계속해서 가정교회를 이끌어 갈 부 지도자들을 길러내어야 한다. 또한 가정 교회가 기본적으로 공동체적 교제를 기반으로 함으로 약해질 수 있는 교육적인 부분을 감당하는 목회를 해야 한다. 

세상 속에서 지도자로 살아갈 사람들을 길러내는 목회를 해야 한다. 해외에 나가서 선교사역을 감당할 사람들을 길러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 고등학생 때부터 세계적인 관점을 가지도록 훈련하며, 세계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

섬기는 삶을 살도록 훈련한다. 낮은 곳에 처한 자들을 항상 생각하는 사람이 되도록 자원봉사자의 삶을 살도록 훈련한다. 신앙 훈련의 기본으로 섬기는 훈련을 시행한다.


3-4. 선교하는 교회를 만드는 목회 

평신도들의 삶의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삶의 현장을 선교의 현장으로 삼으며, 삶의 현장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도록 돕는다.

① 직장 선교 : 직장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도록 한다.

- 직장에 다니는 평신도들을 지역을 구분해서 선교 소그룹을 만든다. 목회자들은 이 지역별 모임을 지원한다. 

- 지역별 직장 선교 소그룹은 1년에 두 번 불신자 초청 모임을 가진다. 

가까운 카페 같은 공간을 빌려서 직장에 있는 불신자들 초청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공부에 초청하는 시간을 가진다.


② 각 가정교회별로 지역선교나 세계선교의 한 분야를 감당하도록 한다. 목회자는 이것을 연결하고, 돕는 역할을 한다. 지역선교를 위한, 전도 프로그램 개발, 선교사역의 감당, 특수사역등을 감당하도록 한다.


3-5.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대로 살게 만드는 목회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도록 훈련한다. 주일 설교, 새벽기도설교, 성경개관 프로그램등을 통해 성경전체를 5년에 한번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성경의 묵상훈련을 체계적으로 실시하여, 말씀을 통해 살아가는 성도들로 훈련한다. 특히 남자 성도들을 위한 기도와 묵상훈련을 실시하도록 한다.


3-6. 사도훈련을 실시하는 목회

지금까지의 제자 훈련의 한계는 듣고 배우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원래 제자 훈련이 가지는 한계가 아니라 우리나라 상황에서 잘못 정착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고 배우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서 잘하는 제자가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사역하는 것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만든 용어가 ‘사도훈련’이다. 성령을 받고 사도의 삶을 살았던 제자들처럼 사도로서의 삶을 살도록 훈련시킨다.


지난 한 학기 기도하면서 머릿속에서 그린 대충의 그림이 이 정도입니다. 아직은 구체적이지 못하지만 점점 더 구체적으로 되어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학기동안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방학동안에도 주님의 은혜와 평안이 가득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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