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좋은 이웃이 되고 있는가?
- 양극화되는 사회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 대학생
이 글에서는 양극화로 인해 고통 받는 이웃들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실적인 모습들을 보고자 최근의 기사들을 모아 보았다. 이런 이웃들의 모습을 살펴본 후 우리가 어떻게 이들의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1. 양극화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양극화 사회에서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불안함이다. 2006년 대통령의 신년 연설에 대한 답으로 쓴 편지의 일부에서 이런 불안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10년째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진 못했지만, 수도권에 방 3개짜리 전세에 자가용도 하나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 공부시키고, 저희들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니 서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안정적일지 몰라도 몇 년 후의 미래도 안정적일 수 있다는 믿음은 갖고 있질 못합니다. 그게 제 삶을 짓누르는 가장 큰 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짤리게 된다면, 교통사고를 당해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큰 병이라도 생겨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면 전 서민 대신빈민이라고 불리게 될 것입니다.
IMF가 가르쳐 준 교훈은 이 나라에서 중산층과 서민, 빈민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겁니다. 어느 한순간 발을 헛디디면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하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변 여건에 따라 내 삶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나라에서 빈민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 하는 것은 대통령님도 뉴스를 통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혼자 지내던 9살 어린이가 개에 물려 죽었습니다. 이혼한 부모나 일 나간 할아버지,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 그 중에서 아이가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부모가 일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나서 죽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뉴스를 보면 마음이 아플 뿐이었지만, 지금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무한경쟁의 이 냉엄한 현실에서 뒤처지면 어떤 험한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이봉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2006-01-17)
대학생들도 이런 불안함으로 떨고 있지는 않은가?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 못하면 평생을 어렵게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대학생들을 짓누르고 있지는 않은가?
양극화 사회에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은 약자들이다. 아이들, 여자들, 비정규직. 이들이 한국 사회 속에서 버림받고, 차별받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사회 양극화에 따른 빈곤과 실직, ‘가족 해체’로 버려지는 아이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진아(가명·10·여)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회사원이던 아빠는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됐다. 이후 비디오가게 등 여러가지 조그만 사업을 했으나 줄줄이 실패했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자주 부부싸움을 벌였고 결국 이혼했다. 진아는 일단 3개월가량 임시로 맡아주는 서울 강남구 수서동의 서울시립 아동복지센터에 있지만 다음 달에는 보육시설 어딘가로 보내질 예정이다.
여성 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까지 각종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진 아이는 4706명. 이 가운데 부모의 실직과 이에 따른 빈곤, 부모 학대 등의 이유로 맡겨진 아이가 전체의 55%인 2608명이다. 또 미혼모가 아이를 낳고도 감당하지 못해 맡긴 경우가1388명으로 29%다. 나머지는 아이들의 비행, 가출, 부랑 때문에 또는 길이나 집을 잃어 복지시설에 수용됐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올해 7월 전국 신용불량자 14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3.8%가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 “가족 불화, 이혼, 별거 등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경제 문제가 가족 해체로 이어지고 죄 없는 아이들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셈이다. (동아일보 2005년 10월 25일 기사)
2003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 1415만 명 중 783만4천명(55.4%)에 달한다. 비 정규직은 여성·청년·노인·저학력 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이 407만 명으로 여성 전체 임금노동자의 70%가비정규직이다. 15∼24살 청년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도 70%를 넘는다. 중졸 이하 학력자는 5명 가운데 4명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월평균임금은 103만원으로 정규직(201만원)의 51.2%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비정규직(44.1시간)이 정규직(41.8시간)보다 오히려 더 길다. 저임금을 벌충하기 위해 더 긴 시간을 일하는데도 월급은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률은 22∼24%에 그치고, 상여금·퇴직금·시간외수당 등 법정복지 및 부가 급여를 적용받는 비율도 16∼23%에 불과하다. 전체 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11.4%인데, 정규직은 22.6%, 비정규직은 고작 2.4%다.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동원할 힘(노조)마저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한겨레21.2004년5월27일 511호 조계완 기자)
우리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빈곤계층의 대표적 집단을 형성하고 있고, 가난의 여성화 현상은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성 빈곤층의심각한 현실은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성장, 높아진 기술력 그리고 새 천년에 대한 높아진 기대감의 뒤안길에 놓여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직시 하게한다.
2000년 통계에 따르자면 전체 빈곤인구 중 빈곤여성의 비중은 55%였으나, 빈곤가구 중 여성가구주 비율은 전체 가구 중 여성 여성가구주 비율인18.5%의 2.5배인 45.8%였다.
여성가구주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은 21.0%로 남성가구주 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 7.0%에 비해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 가구주 가구의 경우 빈곤율이 97년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되었으나, 여성가구주 가구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경제위기 이전의 2/3 수준으로 겨우 회복된 것으로 드러나 여성가구주 가구의 빈곤이 고착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우선가난의 여성화가 진행된 주요한 원인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여성이 저임금 직종에 몰려 있는데다가, 임시·일용직·비정규직 취업으로 인해 고용역시도 불안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성빈곤화가 주로 노령 계층에 집중되어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빈곤 여성가구주 가구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의 여성이다. 노년층의 소득보장을 담당하는 국민연금제도는 소득 활동자 중심이다. 따라서 여성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고, 설혹 참가하더라도 그 기간이 짧고 고용형태가 불안정하고 저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
양극화는 경제적인 생활뿐 아니라, 주거공간과 생활방식, 교육기회와 성취 등에서도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들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4가구 가운데 1가구는 여전히 최저주거기준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주택법에서 공고한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가구가 전체 1431만 2000가구 가운데 330만 6100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구 수 전체의 23.1%다. 최저 주거기준은 가구 구성별 최소 주거면적과 함께 용도별 방의 수, 필수 시설 고려해 건교부가 마련한 것으로 최소면적은 1인 가구는 3.6평(방 1, 부엌1개), 부부는 6.1평(방, 부엌 1개), 부부와 자녀 1명은 8.8평(방 2, 부엌 1), 부부와 자녀 2명은 11.2평(방 3, 부엌 겸 식사실 1개) 등으로 규정돼 있다.
최저주거기준이하 가구는 서울이 72만5200가구로 가장 많고 경기도가 64만 가구, 부산 29만9000가구, 대구 19만9600가구로 대도시에 집중 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소득, 학력에 따른 학생들의 성취 격차를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부모의 소득에 따른 학생들의 성취격차를 보자. 교육고용패널 자료를 통해 가계 소득 수준에 따른 학업성취도(수학능력고사점수) 차이를 보면 [그림 2]와 같다. 이 그림을 보면 가계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학업 성취도 수준이 높음을 알 수 있다. 200만 원 이하 소득 가정 학생에 비하여 500만 원 이상 소득 가정의학생이 평균적으로 30점정도 점수가 높다. [그림 3]은 부모의 학력에 따라 학생들의 학업성취 차이가 뚜렷함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대학원을 졸업한 학생은 아버지가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에 비하여 평균적으로 약 49점이나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부모의 직업 지위, 거주지역에 따라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거주 지역의 경우 도시와 농촌의 차이뿐만 아니라 도시내 지역 간 차이도 확인할 수 있다. (류방란. 양극화와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교육신문)
교육에 대한 이런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이다. 가난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가난이 대물림 되는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능력을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좌절한 채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2. 양극화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대학생들
우리의 이웃들이 양극화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이웃이 되라고 하신다. 고통당하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좋은 이웃이 되어주는 방법이 무엇일까? 여기서는 구조적인 변화보다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는 일을 할 수 있다. 혼자서 구제하는 일은 미약해 보인다. 소그룹이 함께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구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기 중에 소그룹이 모일 때마다, 구제헌금을 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소그룹을 하는 날에는 구제를 위해서 헌금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모든 돈으로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방학동안에 구제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어떨까? 옷, 핸드폰, 용돈..이런 개인적인 필요를 위해서보다 구제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매주 토요일 오후 4시가 되면 어김없이 문을 여는 장애인치과진료소.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구로건강복지센터에서 이 지역 치과의사들이 장애인 무료 치과 진료를 한다. 이런 진료가 벌써 6년을 지속되고 있다. 양극화로 인해 고통 받는 가난한 장애인들을 위해서 무료 진료소를 열거나 집에 있는 장애인들을 찾아가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병원이나 의사들과 연결해 주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방 운영을 통해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혼자서는 한계가 많다. 함께 할만한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나 복지 단체들과 함께 하면 많은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을 잘 받는 것과 함께 관계를 통한 안정감과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나누어 줄 때 우리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에게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좋다. 양극화는 문화를 누리는 것도 양극화 시킨다. 먹고 사는 문제에 매여 있으므로 문화를 누린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다. 영화, 음악, 연극 등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면 미래를 위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