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개혁주의 종말론

기독교 관련책 읽기

by 거룩한나그네 2011. 3. 3. 17:16

본문


종말론에 대한 책을 처음으로 읽었던 것은 조 용기 목사의 『요한 계시록 강해』였다. 고등학교 때 읽었으니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참 신기했던 기억이 안다. E.C.와 적 그리스도등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신기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 성경을 배우면서 그런 신기한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서 읽었던 종말론에 관한 책은 『천년왕국』이라는 책이었다. 천년설에 관한 여러 가지 학설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반박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천년설이 종말론의 핵심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의 중심적인 주제는 천년설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님을 대망하는 자세와 주님이 오늘 오실 것처럼 여기며 현재를 사는 삶에 대해서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강조점을 놓치지 않는 것 같아 즐거웠다. 이미 우리에게서 시작되었고, 완성되었고, 완성될 종말을 기다리며 산다는 것이 우리의 삶이여야 한다.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을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사는 삶. 그러면서도 오실 주를 맞이하기 위해서 긴장하며 사는 삶. 이런 삶 속에서 우리는 점점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2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시작된 종말론과 미래 종말론이라는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미래 종말론은 다시 개별적 종말론과 우주적 종말론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종말론이란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일관하여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1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종말론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약에서 종말론적 전망을 보여주는 것은 전문적인 계시적 개념들이다. ‘오실 구속자에 대한 대망사상’‘하나님의 왕국’ ‘새 언약’ ‘이스라엘의 회복’ ‘성령의 부으심’ ‘여호와의 날’ ‘새 하늘과 새 땅’ 등이 기대라는 지평선 위에서 각기 제 빛을 발하고 있다. 구약의 백성들은 이런 개념들을 통해서 종말론적인 신앙과 삶을 살았다. 구약 전체에 널리 퍼져 있는 이런 개념들을 통해 우리는 구약이 철저하게 종말론적임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의 종말론은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와 앞으로 실현되어져야 할 일, 이 두 가지 측면을 다룬다.’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기대했던 종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통해 이루어 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는 미래의 담보가 된다. 성취는 완성의 담보가 된다. 신약은 이 두 측면에서의 종말에 대해서 다룬다.

3장에서는 역사의 의미를 다룬다. 먼저 배격해야할 역사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말한다. 하나는 순환적 견해이며, 또 하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의 역사론이다. 저자는 이런 견해를 배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런 견해가 많이 인정을 받고 있다. 저자는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의 중요한 특성들을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1) 역사는 하나님의 여러 목적들을 이루는 작업이다. 2) 하나님은 역사의 주님이시다. 3)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이다. 4) 새로운 세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대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은 새로운 세대를 말한다. 5) 역사의 모든 것은 목표를 향해 움직여 가고 있다. 목표는 새하늘과 새땅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볼 때 종말의 시대를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도 알게 된다. 4장에서는 이런 역사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5장에서는 이런 추구를 성령님의 능력으로 해야 함을 보여준다. 더불어 성령님의 일하심과 종말의 관계를 보여준다. 6장에서는 역사속에서 산다는 것이 가지는 긴장점을 보여준다.

4장에서는 역사의 중심이며, 역사의 목표인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서 다룬다. ‘하나님의 왕국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주제이며 따라서 사도들의 전도와 가르침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장에서 하나님의 왕국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기술한다. 질문에 대한 답의 형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왕국의 개념을 정립한다. ‘첫 번째 문제는 왕국이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나 영토를 상징하는 것인지 혹은 하나님의 통치나 지배를 의미하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왕국이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임을 주장한다. 성경에서는 이런 통치가 이루어 지는 하나님 왕국이 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조들이 많다. 1) 예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심 2) 사단이 하늘로부터 쫓겨 떨어짐 3) 기적들이 일어남 4) 복음이 전파됨 5) 죄사함의 부여등을 통해서 보게 된다. 두 번째 질문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나타난 하나님의 왕국이 현재적 실체인지 미래적 실체인지 혹은 양면성을 지닌 실체 인지하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왕국이 현재적이며 동시에 미래적임을 말한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임하였다고 말씀하시고 또한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분명한 성경의 진리이다. 이 진리는 또한 몇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왕국으로 인도하실 수 있다. 2) 하나님의 왕국은 우리에게 회개와 믿음을 요청하신다.3) 하나님의 왕국은 전적 헌신을 요청한다. 4) 하나님의 왕국은 우주적 구속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왕국의 시민이라는 것은 우리가 삶과 실체의 모든 우주의 구속의 목표의 빛에서 바라보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5장에서는 성령님과 종말론의 관계를 설명한다.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심으로 종말이 시작되었다면, 신자들의 삶에서 종말의 시작은 성령님의 임하심부터이다. 그러나 성령님과 종말론의 관계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못했었다. 저자는 먼저 구약에서 말하는 성령님과 종말론의 연관관계를 말한다. 1) 구약은 성령님이 어떤 예언적 징표들을 수반하는 최종적 종말론적 세대가 도래할 것에 대한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한다. 2) 성령님은 장차 오실 구속자 위에 강림하며 그에게 필요한 은사들을 채워주실 분으로 구약은 말하고 있다. 3) 성령님은 물질적 축복들과 윤리적 재생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미래적 새 생활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 구약의 가르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으로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구약에서 가르친 성령님으로 인한 축복을 이미 누리고 있다. 동시에 아직 그 축복들을 충만히 소유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저자는 성령님의 종말론적 역할과 연관이 있는 몇몇 구체적인 성경적인 개념들에 대해서 설명한다. 1)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로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의 양자가 누려야 할 축복과 특권이 완전히 누리지는 못한다. 2)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첫 열매가 되게 한다. 이 첫 열매는 다가올 더 좋은 것들의 첫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재림 후에 얻게 될 풍성한 추수를 기대하게 한다. 3) 성령님은 신자들을 인 치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을 주심으로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실 것을 확증하신다. 4)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셨다. 그 성령님께서 우리도 부활시키실 것이다. 그리고 그 부활은 이미 이루어졌다. 

6장에서는 역사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긴장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미”와 “아직”이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이 두말은 긴장관계를 유발시킨다. 그리고 이 말은 우리 신자들의 삶과 생각에 지대한 영항력을 미친다. 1) 교회를 볼 때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길 때도 이런 긴장관계를 염두에 주어야 한다. 2)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자극제가 된다. 3) 우리가 어떤 모습인지를 알고, 우리에게 놓여진 전쟁을 알 수 있다. 4) 세상의 문화를 변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완전히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역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7,8,9장은 미래에 있을 개별적인 종말론을 다루고 있다. 7장에서는 육체의 죽음을 8장에서는 영혼불멸에 대해서 9장은 죽음과 부활사이의 중간상태에 대해서 다룬다. 

7장에서는 죄와 죽음의 관계와 구속과 죽음의 관계를 다룬다. 죄로 인해 인간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너무나 당연하게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당연한 사실이 아님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저자는 성경구절의 정확한 해석을 통해서 인간의 죽음이 죄로 말미암는 것임을 증명한다. 또한 구속의 빛 아래에서 죽음을 살핀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정복하심으로 그의 백성들은 죄로부터 속량되었으며, 또한 죄의 결과들로부터 구함을 받았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죽음이란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들의 죽음은 영생에 이르는 선물이 된다. 8장에서는 영혼 불멸론을 다룬다. 영혼 불멸론은 헬라철학에서 나오며, 고대의 대부분의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기독교가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부터 영혼불멸론은 기독교적 진리인 것처럼 되었다. 그러나 1) 성령은 영혼불멸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2) 성경은 영혼이 본래적으로 파괴될 수 없는 한 본체이기 때문에 영혼의 계속적 존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 죽음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포함한 것처럼, 생명도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선이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말할 수 있다. 9장에서는 중간상태에 대해서 설명한다. 중간 상태에 대한 교리는 어거스틴시대 이후로 계속해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은 중간상태에 대해서 거의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중간생태에 침묵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간상태에 대해서 성경이 완전히 침묵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눅23:42-43절이고 또 하나는 빌1:21-23이다. 세 번째는 고후5:6-8절이다. 이 구절들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이다. 이것은 우리가 죽으나 사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분명한 위로이다. 그러나 중간상태에 우리가 어떤 상태로 있을 것인지는 하나의 신비이다. 

10장에서부터는 우주적 종말론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성경의 풍부한 증거들을 통해서 ‘신약성경이 재림에 대한 기대로 가득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종말론에서 가장 중한 장이 10장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재림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가? 선언정도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재림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가? 세상은 너무 바쁘고, 세상은 너무나 안락하고 그래서 나는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를 간절히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 ’재림에 대한 우리의 대망은 여러 면에서 우리의 삶의 질에 대해 영령력을 끼치게 된다.‘ 종말론의 목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오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대망 속에서 온전한 삶을 살도록 도전해야 하는가? 그런데 종말론 하면 자꾸만 ’천년왕국‘이 제일 중요한 주제인 것으로 보기 쉽다. 그래서 논쟁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를 놓쳐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11,12 장에서는 징조들에 대해서 말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이 오시기 전에 나타날 현상들을 징조로 보여주셨다. 이런 징조들의 적절한 기능은 무엇인가? 1) 징조는 먼저 과거로부터 출발한다. 삼위 하나님이 이루신 크나큰 승리가 기초가 되다. 2) 시대의 징조들이란 앞으로의 역사의 종말 특히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3) 시대의 징조들은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왕국과 악의 세력들 사이에 끝없는 대립을 나타내는 것이다. 4) 시대의 징조들은 결단을 촉구한다. 5) 시대의 징조들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깨어 경성할 것을 요구한다. 11장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보았던 것은 마태복음 24장 14절에 대한 해석이다. 많은 선교도원가들이 이 본문을 이용해서 선교에 참여할 것은 독려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너무나 일방적인 해석이다.

13-16장에서는 천년왕국을 둘러싼 여러 가지 견해들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분명히 무 천년설의 입장에 서있다. 이런 입장에서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먼저 이중 재림의 이론이 배격한다. 배격하는 이유는 1) 신약에서 두 단계 재림이론을 세울 수 없다. 2) 대환란 전에 교회의 휴거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3) 성경에서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구절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4)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의 백성들과 함께 오심이며. 그의 백성을 위해 오심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14장에서는 천년기에 대한 주요한 견해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15장에서는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을 비판하고 있다. 이런 논쟁의 핵심은 결국 요한계시록 20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16장의 내용이다. 요한계시록 20장을 둘러싼 논쟁은 천년왕국이 실제적이냐, 아니면 상징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무 천년설은 천년왕국을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왕국을 지상적으로 다르시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렇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특히 역사적 전 천년설과 무천년주의자들은 여전히 논쟁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논쟁 자체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두 쪽 다 나름대로의 성경의 증거를 가지며, 정당하고 역사적인 해석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견해을 선택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견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나의 견해를 인정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견해를 용납하는 것도 필요하다.

17-20장에서는 재림으로 인한 완전한 회복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7장에서는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 다룬다. 앞부분은 부활의 시기문제를 다루고, 뒷부분에서는 부활의 양태에 대해서 다룬다. 부활한 육체의 양태에 대해서 몇 가지 대조되는 단어들을 통해서 설명한다. 부패되지 않음/부패, 영광/ 욕됨, 강함/ 약함, 신령한 육체/ 영적 육체. 이런 특징을 부활한 우리 육체가 같이 가질 것이다. 최후의 심판에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은 심판에 대한 소망이다. 그동안은 심판에 대해서 두려워하기만 했던 것 같다. 시험을 준비하듯이 두려워했다. 그러나 심판은 한편으로 신원의 날이기도 하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심판관이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또한 심판은 영원한 형벌을 주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심판에 의해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다. 이 지옥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더욱 진지해질 수 있다. 20장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다룬다. 여기서 저자는 지구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갱신된다고 본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여기에 쓰인 헬라어가 시간과 기원에 있어서 전혀 새 것이라는 의미이다. 2) 로마서8장에서 나타난 바울의 주장에 근거를 둔다. 3) 부활한 육체가 그 전의 육체와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가지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성경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견해를 개괄할 후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때 충실한 성경 주석을 기초로 한다. 성경의 구절들이 가지는 의미를 쉽게 속단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비교적 공정하게 다룬다. 그러나 분명한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임한다. 이런 태도들을 통해서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하는 방식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된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읽기 쉽고,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런 장점은 대가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문제를 복잡하게 풀어가지 않는다. 또한 애매하지 않다. 가르치는 자로서 우리는 항상 이런 자세를 배워가야 겠다. 

관련글 더보기